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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프로그램_단기] 39기 월드프렌즈 케냐 (위켄냐)팀 - 김건하 단원
조회수:1827
2020-01-27 23:55:58

 고등학교 입시 시절, 배고프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거란 말을 하며 부모님과 진로문제로 갈등을 많이도 겪었습니다. 꿈. 생각만 해도 가슴 속에 무언가 차오르는 것 같은 단어를 품고 학창시절을 마치고 신입생이 되어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다니던 학교에 자퇴서를 내밀고 저는 두 번째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꿈을 쫓아서가 아닌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나오기만 한다면 취직은 보장된다는 간호학과를 갔습니다. 어떤 봉사나 희생정신으로 간호사가 되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간호사를 꿈꾸었다거나 간호사가 되겠다는 큰 계기나 결정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내가 진정성 없이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힘들다는 간호사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오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떤 간호사가 될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공부할 것인가. 여기저기 조언도 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나온들 성취감 없었고 병원에서 하는 봉사활동은 봉사시간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양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닐까 대외활동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대학사회봉사협의회 월드프렌즈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공을 살려 성보건 교육 특화 사업인 케냐로 지원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전공 관련 봉사를 하면 무엇이든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지구 반대편 미지의 땅 아프리카로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입국심사를 할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밤 사마리아 미션스쿨에 도착해 발을 디디니 신발에 들어오는 가시의 감촉에 실감이 났습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낯선 바닥의 감촉과 풍경, 정말이지 낯선 기숙사. 23인실의 움직일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는 침대도 처음이었으니까요. 바가지 물로 하던 샤워, 삽과 일인용 텐트를 들고 찾는 자연 화장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함께한 26명의 단원들 모두가 처음이고 낯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준비해온 교안으로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의 집중과 참여도는 얼마나 높은지 교실 앞에 서면 땀이 삐질삐질 났습니다. 어딜 가나 ‘잠보’ 인사를 건네며 따라오는 아이들 덕에 처음 유명인의 기분을 느껴보았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아침 6시면 자연스레 눈이 떠졌고 체조를 하고 스테인리스 컵에 아침을 받아먹고 쉬며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수업에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나니 영어도 부담이 덜했습니다. ‘잠보?’ ‘잠보!’ 로 끝나던 대화도 이름과 나이, 학년을 묻고 ‘오늘 점심은 어땠니?’ 이런 일상대화까지 발전하였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수업에서 한 친구가 지어준 이름 happy라는 의미의 ‘Nashipai'로 케냐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을 준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짓궂은 학생들이 스와힐리어를 모르기에 자기들만 아는 은어를 이름으로 붙여주더군요. 뜻을 물어보니 ‘축복’이라며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며 낄낄대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제 이름표에 적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후 한 친구가 다가와 제 이름표를 꺼내어 그 이름을 그어버렸습니다.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나쁜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며 지워주고 저의 이름은 Nashipai 하나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친구의 행동은 마음에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그 친절에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내가 받은 큰 감동을 그 친구는 알까요.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 친구에게는 당연하니까 한 행동이었을 텐데 작은 불씨가 되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친절이 이렇게나 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간호사가 되어서 환자에게 이런 감동을 선사하는 간호사가 되어야지 생각했습니다. 나를 다시 돌아보았고 앞으로 행동의 하나의 잣대가 세워졌습니다. 학교에 상주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간호사 선생님의 방 앞에서 노크하며 너스를 찾았습니다. 누군가는 간호사 선생님을 마마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간호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아프고 다친 사람에게 주변에 간호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며 위안이 되구나. 나도 다른 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뿌듯하고 기쁜 일이겠구나.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만약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는데 내가 공부를 덜 해서 그 증상과 치료법을 모른다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확실하게 치료법을 알려주는 것은 멋있고 대단한 일입니다. 단장님을 보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고 느꼈습니다. 일에 대한 사랑까지 지닌 사람은 나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열정적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나도 저런 모습으로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미래의 열정적인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남은 학교생활에서 열심히 공부할 원동력이 생겼습니다.

 

짧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물음과 고민이 머릿속을 떠다녔습니다. 그중에는 답을 구한 것도 있고 아직 물음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습니다. 깨달음을 주던 순간과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며 지냈습니다. 나의 노력이 다른 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길 바래봅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한 방향성을 알려준 2주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또다시 가겠냐고 물어본다면 갈 수만 있다면 당연히 yes라고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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